유대인 : 자선을 베푸는 습관

유대인들의 저금통

유대인 가정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자녀들에게 자선을 가르쳐왔다. 유대인 가정에는 보통 유대민족기금(Jewish National Fund)라는 헌금 통이 있다. 안식일 직전에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동전을 쥐여준다. 어머니가 안식일을 기념하는 촛불을 켤 때 자녀들은 그 통에 돈을 넣는다. 어떤 유대인 가정은 그 밖에도 여러 개의 헌금 통을 만들어놓고 자녀들이 등교하기 직전이나 식사를 하기 직전에 헌금 통 옆에 부모가 마련해 둔 동전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헌금하도록 해 늘 자선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한다. 자선 교육에는 아무리 갓난 아이라도 예외가 없다. 그들의 경전인 토라보다도 자선을 먼저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자선하는 습관은 유대인 경제교육의 일환이기도 하다. 한 번은 모 신문사 기자가 한국에 거주하는 랍비 오셔 리츠만에게 자녀들에게 어떻게 경제교육을 시키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 대신 당시 6살이던 어린 아들을 불러 그에게 동전 한 닢을 건네주더란다. 그러자 그 아이는 두말 않고 그 동전을 거실에 놓여 있던 헌금함에 넣더란다. 유대인들에게 돈은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나님이 잠시 맡긴 재물이다. 

자선도 경제도 결국은 돈이 중심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적인 동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과는 정반대로 가르친다. 돈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을 돕는 데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돈은 욕망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돈에 욕망을 투영하는 것은 인간이지 돈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돈을 매개로 이기심을 드러낼 것이냐 혹은 이타심을 표현할 것이냐는 180도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 한 유대인 랍비는 자기를 위해 빵을 걱정한다면 그건 육체적인 욕망이요, 이웃의 빵을 걱정한다면 영적인 욕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떤 사람이 랍비에게 큰 호의를 베풀었다. 이에 랍비는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축복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랍비는 그에게 내세에서의 영적인 축복과 이 세상에서의 부의 축복 중 하나를 택하게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뜻밖에도 부의 축복을 선택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의 친구들이 분개했다. 친구들이 생각하기에, 그는 영적인 축복의 가치를 충분히 알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영적인 축복을 돈과 바꾸다니, 친구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영적인 축복이라고? 그게 누구에게 유익한가? 그것은 나에게만 유익할 뿐이야! 하지만 돈을 가지고 있으면 나는 이웃들을 도울 수가 있네!”

부자를 보는 관점도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유대인들이나 우리나 모두 부자를 부러워하는데, 그 이유는 완전히 차이가 난다. 우리가 부자를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로 생각하는 반면, 유대인들은 자선을 할 많은 기회를 가진 사람으로 본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부자를 심장에 비유한다. 심장은 피를 순환하는 역할을 한다. 몸의 모든 세포는 심장에 의지한다. 심장이 피를 내보내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피는 돌고 돌아서 다시 심장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리고 돈은 우리 몸의 피와 같다고 생각한다. 옛 화폐 중 하나인 ‘주즈(Zuz)’라는 화폐의 이름도 순환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말 ‘돈’도 ‘돌다’라는 말에서 왔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직접 가난한 자를 돕지 않으신다고 믿는다. 부자를 통해서 돕는다. 부자는 그러니까 하나님이 맡겨준 부를 품은 자들이다. 그 부는 반드시 가난한 자들을 위해 흘려보내야 한다. 그 부를 흘려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는 마치 흘러들어온 피를 자기 것인 양 모으기만 하고 흘려보내지 않는 심장과 같다. 심장은 터져서 죽고 몸의 다른 부분은 피가 모자라 죽고 말 것이다.

이 같은 부자들의 탐욕을 지적한 것이 칼 막스의 『자본론』이다. 물론 『자본론』의 결론이 공산주의 혁명인 것은 좀 못마땅하지만 그의 지적은 통렬하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언제든 가난한 이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물론 지나친 자선으로 자신이 가난해져선 안 된다.

어떤 사회가 건강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부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보고 자신의 부를 기부하려고 애쓴다면 그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부자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답은 자명하다. 그런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양극화가 심화돼 결국엔 파멸하고 만다.

미국이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건 일부 억만장자들의 기부 행렬 때문이다. 2010년부터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시작한 억만장자 기부클럽(The Giving Pledge)은 우리에게 부자는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들은 사후에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서약했다. 현재까지 23개국 209명의 억만장자가 이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경우, 미국 전체 기부금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50대 최고 기부자 중 15명이 유대인들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얘기해 부는 어차피 영원히 자신에게 머물지 않는다. 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로 넘어간다. 내 주머니에 부가 가득할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선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돈과 자선에 대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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