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후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좋은 습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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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만큼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교보문고에 가서 검색을 해보면 습관에 관해 얼마나 많은 책이 나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 텔레스도 습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가 있죠.

“네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는 너를 만들어 나간다. 고로 탁월함이란 그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리스토 텔레스의 주장은 그의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토라(모세오경)가 그것을 누누히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죠. 토라의 핵심은 율법과 그 구체적인 실천지침인 계명입니다. 계명은 사실 우리의 인격을 고양시키기 위한 가이드라인입니다. 그대로 따라서 실천하면 고매한 인격으로 바뀔 수 있는데, 그것은 반복에 의한 좋은 습관 형성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계기는 율법이 사실은 인격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좋은 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주시려는 하나님이 친히 주신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는데, 마침 좋은습관연구소의 이승현 대표님이 2년 전에 저를 찾아오셔서 유대인의 습관 관련 책을 써달라고 요구해 응하게 되었습니다.

​왜 습관이 중요하냐면 많은 주장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악한 성향을 제압하는 데 매우 긴요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질투, 욕망, 명예욕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되면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자신과 공동체를 몽땅 파괴하는 폭탄이 되고 맙니다. 마치 모든 사람이 수류탄 하나씩을 갖고 있는 셈이죠. 자폭해서 너도 나도 죽이는 그런 수류탄 말입니다.

뭐 좀 더 유대인식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불(esh)’이 있습니다. 불은 에너지입니다. 남녀노소 이런 불의 에너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불은 잘 다루지 않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여기 저기 불을 지르면 수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수도 있고 공동체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을 잘 다루면 그와는 정반대로 매우 유용합니다. 불로 밥을 지어먹을 수도 있고 도구를 만들 수도 있고 물을 끓여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불을 잘 사용하려면 박스 안에 넣어서 잘 컨트롤해야 합니다. 난로가 그 예입니다. 그 박스가 바로 인성입니다. 사람이 쓸모 있으려면 인성이 좋아야 합니다. 인성이 개판이라서 조금만 열이 올라도 벌겋게 달아오르고 통제가 되지 않으면 이만저만한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불은 통제 가능해야 유용한 에너지로 쓸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불을 컨트롤하는 박스를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바로 좋은 습관입니다. 좋은 습관은 좋은 인격의 바탕이 되고, 좋은 인격은 좋은 리더의 바탕이 되고, 결국 공동체 전체 번영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좋은 습관은 반복에 의해 형성됩니다. 반복은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의지가 있어야 하고 강제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반복이 이뤄지면 어느 순간엔가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몸에 배게 됩니다. 이런 습관은 어렸을 때일수록 잘 됩니다. 아이들은 하얀 백지 같아서 뭐든 쉽게 받아들이고 익힙니다. 어린 나이에 좋은 습관을 들여놓으면 평생 갑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지 않나요?

좋은 습관과 탁월함과 연결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선(쩨다카)의 습관을 예로 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자선의 습관은 유대인들이 가장 먼저 자녀들에게 꼭 몸에 배게 하는 습관이니까요. 토라 공부보다 더 일찍 시작합니다. 자선 또는 쩨다카는 유대인의 율법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중요한 율법이냐면 탈무드에서 아시(Assi)라는 랍비가 다른 612개의 계명을 모두 합친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자선은 ‘마음의 할례’라 할만큼 좋은 인격 형성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토라를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선 습관이 토라를 공부할 때 필요한 고매한 인격을 먼저 형성하게 해서 토라의 말씀이 더 잘 깨달아지도록, 토라의 말씀이 좀 더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도록, 토라의 말씀의 열매가 더욱 많이 더 잘 맺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인성 없이 토라 없고, 토라 없이 좋은 인성 없다’는 탈무드 피르케이 아보트의 말이 있습니다.

오라호트 짜티킴(Orachot Tzadikim)이라는 책에서 자선의 질은 습관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습관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자선을 가끔 하는 사람이 있고 자선이 습관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자선을 가끔 한 사람은 나중에 자선한 일이 기억 날 것입니다. 자기 언제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자선을 했는지 기억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자선이 습관이 된 사람은요?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평소에 자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기억할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에게, 얼마나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선을 받아 성공한 사람이 어느날 찾아와 “선생님 덕분에 제가 가난을 이겨내고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하면 “내가 언제 당신에게 기부했죠?”하며 반문할 것입니다.

​이런 장면이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합니다. 인자가 이땅에 오실 때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나눈다고 하면서 양의 편에 있던 의인들에게 인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내가 배고프고 헐벗을 때 도와주었다.” 이에 의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는 그런 적 없는데요.” 그러자 인자가 이렇게 다시 말합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네 이웃(소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다.”

​이번에는 염소의 편에선 자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내가 배고프고 헐벗을 때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자 악인들이 이렇게 따집니다. “우리가 언제 도운 적이 없습니까? 정말 열심히 도왔는데요.” 그러자 인자는 “네 가난한 이웃(소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인들은 자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워낙 습관이 돼놔서 구체적으로 누굴 도왔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들은 가끔 아주 가끔 하기 때문에 다 기억하면서 인자에게 알아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습관이 완전히 인격화하면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까지 그 수준이 이르게 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그의 선행을 기억하십니다. 그 대가로 의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는 것, 그것이 인간이 오를 수 있는 탁월함의 극치입니다.

좋은 습관이 인격화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할 때 갈등하지 않게 됩니다. 선한 일이라면 비록 불이익이 찾아와도 그 일을 하고 맙니다. 오직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그만이라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불이익을 따진다면 그래서 그 선한 일을 그 때문에 포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의 수준에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선한 일을 선하기 때문에 하고, 악한 일은 악한 일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을 신실(integrity)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습관화한 사람을 신실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탈무드에서 말하기를 10번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가장 마지막 10번째 시험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는 그 명령을 받자마자 새벽같이 일어나 말안장을 직접 씌우고 서둘러서 모리아산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부당하다 어쩐다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실천을 습관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의 경지를 “하나님을 두려할 줄 아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12).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아브라함이야말로 하나님 말씀 실천이 습관화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말씀 실천이 습관이 된지라 굳이 좌고우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조로 삼으시고 더 넓게는 믿음의 시조로 삼으셨습니다. 선행의 달인, 선한 행위의 습관이 아브라함의 인격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것이죠.

​그런 아브라함을 모태로 아브라함과 같은 높은 수준의 인격에 이르도록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으로부터 3300년 전에 시내산에서 모세를 대표로 해서 토라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매우 높은 경지의 인격을 갖춘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계명이 습관이 되면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에덴 동산에서 잠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아닐까요?

유대인 지혜의 습관

​저는 이 책에서 23개 파트로 나누어 유대인들의 습관을 살펴보았습니다. 율법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해야 했으나 너무 어려워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율법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우리가 보고 배울만한 것만 추려서 실었습니다. 이 외에도 613개나 되는 율법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습관들은 정말 많습니다만 그것은 다음에 혹시나 책을 쓸 일이 있을 때 다시 추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아래는 제 책의 서문 중 일부입니다.

​”율법에는 매일, 매주, 매월, 매년 반복적으로 지켜야 하는 계명들이 있습니다. 13세 이상 유대인 남자들은 매일 세 번 기도해야 하고, 모든 유대인들은 매주 안식일을 지켜야 하며, 모든 유대 기혼 여성들은 매월 몸을 정결탕에 담가야 하며, 모든 유대인들은 매년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이 같은 율법들을 지키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이 요구하는 좋은 성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주장입니다.

​이 책을 통해 유대인들의 율법과 계명을 살펴봄으로써 그것에 뿌리내린 그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그 안에 감춰진 좋은 습관을 발견하고 이를 우리 삶의 지혜로 응용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습관은 쉼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습니다. 그 물방울 앞에 뚫리지 않는 바위는 없습니다. 좋은 습관은 우리를 탁월함으로 이끕니다. 유대인들의 좋은 습관을 거울 삼아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욕망을 내려놓고 선한 마음으로 그 공간을 가득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곧 나를 흔드는 이 세상의 온갖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며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좋은 습관이 탁월함으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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