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 결국엔, 콘텐츠

“징검다리 게임이라는 게 있는데 유리판을 징검다리 형식으로 건너가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임 장면이 있는데요. 그 게임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다음에는 결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는 구조로 설계가 되어 있어요. 우리가 살면서 아무리 나의 이익과 나의 성공이 중요하지만 그 이익과 성공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이야기가 거기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의미가 있는 아닐까 싶어요.”

JTBC 뉴스룸 배우 이정재 인터뷰 (2021. 10. 05)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 83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의 제작진이 만든 오리지널 드라마에 투자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든 사례는 이미 <킹덤>과 <D.P.>도 있었지만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 하겠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상과 소품이 큰 인기를 얻으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출연자에 대한 관심도 드라마의 인기 상승에 힘입어 뜨겁다. 출연자들의 SNS 계정에 팔로잉 신청도 줄을 잇고 있으며, 미국 유명 토크쇼에서 주요 출연자들을 게스트로 섭외하기도 했다. 단순한 흥행을 넘어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이나 <킹덤> 그리고 <D.P.>의 성공 요인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들 중에 가장 많이 거론이 되는 것은 과감한 예산 투자와 제작진의 자율성 보장이다.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이 1순위로 넷플릭스를 찾는 이유는 세계 2억 명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방송에서는 금기시하는 소재도 문제시 하지 않는다.

제작비도 한국 드라마 평균 제작비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킹덤> 20억 원, <스위트홈> 30억 원, <오징어게임>이 22억 원 정도의 회당 제작비로 만들어졌는데, 한국 드라마의 경우 평균 회당 제작비는 이것의 절반 정도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높은 제작비를 지급함에도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가성비’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투자하는 미국 드라마의 경우, 회당 평균 제작비는 보통 100억 원이 넘고 있는데, 훨씬 적은 투자금을 투입한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흥행을 만들어내며 가입자 수를 늘려주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 해외 드라마와 비교하면 엄청 저렴한 가격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사실 한국의 콘텐츠 경쟁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받아왔다. 한류 드라마로 아시아 시장을 석권했으며, K-POP 아이돌들의 음악이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런닝맨> <복면가왕>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 포맷이 수출되어 각 국에서 국내 로열티를 내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 밖에도 <기생충> <부산행> 등의 영화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라는 인류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국적인 감정과 소재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세계인들에게는 신선함을 준 것이 한류 콘텐츠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서바이벌 게임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조금 더 캐릭터의 애환이라든가 서사를 세밀하게 잘 그려내서 그려낸 캐릭터들이 시청하시는 분들에게 공감을 좀 얻은 게 아닌가”

– JTBC 뉴스룸 배우 이정재 인터뷰 (2021. 10. 05)


이러한 한국 콘텐츠들의 세계적인 인기는 한국의 콘텐츠 창작 능력이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과감한 투자와 제작진의 자율성이 주어진다면 언제든 세계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콘텐츠 산업은 시대를 이끌어 갈 핵심 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한국 콘텐츠는 ‘한류’와 ‘K-POP’이라는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콘텐츠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결국은 콘텐츠 자체가 가진 힘만으로 한국 콘텐츠는 세계 시장의 주류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물론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의 모든 권리를 가져감으로써 우리에게 과연 실익이 있느냐,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다 번다는 비판도 있다. 공급망/플랫폼을 갖고 있다는 것은 플랫폼 경제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가 아닌 곳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되었다면 지금의 결과를 동일할게 거둘 수 있었을까? 아마도 쉽사리 그렇게 될 거라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지금 우리에게는 안타깝지만 아직은 주도권이 없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순환된다. 주도권을 내줬다가 다시 가져오는 반복을 거듭한다. 때로는 플랫폼이 강세였다가 때로는 콘텐츠가 강세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발전을 이뤄간다. 우리 콘텐츠도 언젠가는 유통망을 뛰어넘어 그 자체만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반도체, 자동차 하청부터 시작했듯 한국 대중문화 미래는 지금부터”라고 조선일보 어수웅 기자는 말했다. ‘하청’이라는 단어가 썩 유쾌하게 들리진 않지만 기자 말대로 지금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세계인 누구나 쉽게 이해할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서 인류 보편의 감정과 문제를 건드리는 것일지 모른다. 그 연습을 지금 아주 많이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의 대중문화가 세계를 노릴 때, 핵심 열쇠가 있다. 콘셉트(concept)는 높게, 콘텍스트(context)는 낮게. 주지하다시피 ‘오징어게임’의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불평등이었다. 하이 콘셉트.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맥락은 초등생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동심의 게임들이다. 언어에 의존할 필요 없는, 특별한 설명이나 기초 지식은 필요 없는 로(low) 콘텍스트”

조선일보 어수웅 기자 (2021. 10. 12 조선일보 칼럼)


산업화에 우리가 한 발 늦은것처럼, 플랫폼 경제에서도 한 발 늦은게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넷플릭스나 유튜브같은 플랫폼을 가질 것을 주문하기 보다는 플랫폼에 실릴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플랫폼은 결국 다수의 규모의 경제가 비롯될 때 힘이 생기고, 이후 자본과 합쳐질 때 더욱 막강한 힘을 보여준다. 단순히 실력만으로 따질 수 없는 숫자(시장의 힘)가 있다. 개인적으로 중국과의 여러 합작 프로그램을 만들며 배운 교훈이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그런 힘이 없다면, 눈물 콧물 쏙 뺄 재미난 무언가를 만드는게 더 나을지 모른다.

‘결국엔, 콘텐츠’라는 지혜를 <오징어 게임>을 통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본다.

글 : KBS 고찬수PD (<결국엔, 콘텐츠> 작가)

* 도서 <결국엔, 콘텐츠>에는 KBS에서 다양한 방송 콘텐츠를 만들고 실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 기획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자질들을 습관으로 정리한 책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기 예능프로그램들의 성공 이유, 제작자/기획자로서 콘텐츠를 만들 때 알아야 할 것,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콘텐츠 제작을 위해 어떤 것들을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지 등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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