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세상의 많은 딸은 그렇다. 엄마의 삶을 동정하다가, 비난하다가, 이해하다가, 또 거부한다.”

​얼마 전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9)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딸과 엄마는 과연 어떤 관계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성장하면서 엄마의 부재를 경험했던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는 여배우로 사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말하는 엄마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부)’와 불안한 재회를 하게 된다. 인생을 정리하는 회고록 발간을 앞둔 엄마를 축하하기 위한 만남이었지만, 진심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엄마가 자신의 기억과 달리 그 시절을 아름답게 미화한 것을 알게 되면서였다. 회고록의 글은 가슴에 묻어둔 딸의 분노를 흔들어 깨웠다.

세상의 많은 딸은 그렇다. 엄마의 삶을 동정하다가, 비난하다가, 이해하다가, 또 거부한다.

딸 뤼미르는 엄마 파비안느를 본격적으로 비난하게 되는데 이상한 것은 엄마의 태도였다. 엄마는 딸의 분노와 원망에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처럼 조용히 무시했다. 오히려 배우로서 성공한 자신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딸의 비난 속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에겐 모든 게 대사야. 넌 배우로 살아보지 않아서 몰라.”

연기하듯 인생을 살았다는 엄마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사랑했고, 도취해 있었다. 그런 엄마의 곁에 사랑을 갈구하며 살았던 딸은 원망을 멈추지 못했다.

재밌는 것은, 영화가 약속된 ‘종료 시각’을 몇 분 앞두고, 생각보다 쉽게, 그것도 극적으로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어느 거리에서, 길거리 연주자의 공연 앞에서,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깨동무하며 함께 춤을 췄다. 그리고 늦은 밤, 자서전 속 ‘진실’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짧은 대화에서 딸은 엄마에게 묻는다.

“마법이라도 부린 거예요? 이러다간 금방 엄마를 용서할 것 같거든요.”

딸의 질문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을 한다.

“너하고 나는 줄곧 잘 지내 왔잖니. 서로 아는데, 마법이 왜 필요해.”

엄마와 딸은 그런 관계다. ‘서로 아는 사이’다. 서로를 원망하며 긴 세월을 살았다고 해도, 용서하는 일은 마법처럼 쉽게 펼쳐지는, 연민으로 가득한 사이.

ㅡ 글 : 작가 정화영

ㅡ 위로가 습관이 되는 법

ㅡ 좋은 습관을 연구하고 책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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