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작가 정화영, 소안도에서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소안도에서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6시간이 넘는 긴 여정을 혼자 운전하며 버텨야 했다.

라디오 주파수도 잡지 못한 채, 묵언 수행하듯 운전을 하다 어느 이름 모를 터널에 진입한 순간.

내 몸이 이상했다. ‘발작’이 시작된 것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팔과 다리가 경직됐다.

그리고 곧 알 수 없는 ‘강박’이 찾아왔다.

넌 죽을 거야. 교통사고가 나서 오늘 여기서 죽을 거야’

라는 강박이었다. 연예인들이 토크 소재로 삼던 그것.

‘공황 장애’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10여 km를 더 저속으로 움직이다 처음 보이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숨쉬기가 조금 편해지자 나는 라면을 사 먹었다.

이걸 먹고 나면 다시 운전할 수 있고, 아무렇지 않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목구멍으로 라면을 밀어 넣고 있는데,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이 전화기에 보였다.

유진아, 잘 있었어? 웬일이야?”

“작가니임…, 작가니임…, 어떻게 해요….”
“저 일 못 할 거 같아요. 제가 할 수 없는 일인 거 같아요….”

방송 작가로 사는 우리는 자주 다른 프로그램을 만나고,

모르던 사람들과 새로운 기획을 하고 새로운 틀을 잡는 일도 부지기수로 한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아이디어를 비난하지는 않을까’
‘내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야 늘 있지만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다.

다른 말로 위로할 것도 없었다.

유진아, 강하게 마음먹어! 넌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해야 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게, 그냥 내가 강하게 먹는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걸까.

나 역시도 지금 이 혼란된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데.

나는 생각을 바꿨다.

“유진아. 너희 프로그램 메인 작가님한테 가서 솔직히 말해봐.
내가 가진 능력보다 맡은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잔소리가 섞인 위로를 하다가 다시 격려를 쏟아내고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순간 돌아보니,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손에 전화기를 들고, 다시 운전을 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었다.

유진이의 불안한 마음에 빠져 나를 잊어버린 순간,

나는 나의 ‘불안’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내가 아닌 타인을 바라볼 때, 관심과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집중시켰을 때,

마법처럼 일어난 일이었다.

그 뒤로도 몇 년간 더 터널에 들어갈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공포와 싸워야 했다.

그럴 때면 손에 힘주어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이겨낸 그 순간의 기적이 떠올랐다.

기적의 순간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로하던 순간이었다는 것을.


작가는 다큐 전문 작가로 상복이 많았다.

생애 처음 기획한 작품이 SBS TV문학상에 뽑히며 방송 작가로 데뷔하더니, 이후 2018년, 2020년 두차례 휴스턴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백금상(Platinum Remi)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2019년 방송콘텐츠 대상에서 최우상을 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다큐 방송작가로 일하며 사람과 사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고 발견하는 데 능하다. 그래서 작가는 누구보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작가도 위로에서만큼은 실패를 거듭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작가는 깨닫는다. 서툰 위로였지만 결국은 나를 향한 위로였음을.

”서툰 위로였지만, 기적은 오히려 내게로 왔다.”

위로 받지 못할 인생이 과연 존재하기나 한 걸까? 반대로 누군가를 위로해본 적 없는 인생은 있기나 한 걸까?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다시 위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번에 작가가 펴년 책 <서툴지만, 결국엔 위로>에서 작가는 총 2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을 지나쳤던 사람들을 하나씩 회상하며, 그들에게 보냈던 위로 혹은 위로하지 못했던 후회의 말들을 하나씩 펼쳐 놓는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것처럼 각각의 에피소드는 모두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여기에 작가는 그동안 읽고 봐온 책과 영화를 덧붙이며 우리의 고민과 좌절은 누구나 겪는 일상의 한 부분임을 알려준다.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습관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때로는 작가가 되었다가 때로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며 ‘위로’라는 선물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인용한 수많은 책과 영화는 더더욱 우리의 내면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씨앗이 될 것이다.

위의 얘기는 책 속의 스무개 에피소드 중 하나를 가져와 요약해보았다. 스무개의 에피소드 모두는 작가의 체험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1. 어떤 위로라도 기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은 분들
2.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위로를 전하고 싶은 분들
3. 내 인생도 한편의 다큐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싶은 분들
4. 오늘 잠자리에 누우며 내일의 기적을 꿈꾸는 분들
5. 위로의 대화법을 익히고 싶은 분들
6.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늘 혼자라고 생각하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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