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쥐꼬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직장인들의 월급이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직장생활 10년이 넘도록 변변한 목돈 한 번 손에 쥐어 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옛날에 비해 요즘 직장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소비 유혹에 시달리며 산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SNS나 유튜브 영상 보기 등에 쓰는데 그곳에는 온통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로 넘쳐 난다. 이런 사진이나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자랑해야 할 것 같고, 나도 뒤처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덩달아 온갖 인증샷을 찍어서 올리기 바쁘다. 심하게 얘기하면 인증샷 때문에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돈이 모이지 않는 이유로 “소비 통제가 어렵다”는 사실을 1순위로 꼽는다. 특히 이제 막 성인이 되었거나 SNS 사용도가 높은 2030일수록 가장 많이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월급을 가지고도 신기할 정도로 큰 목돈을 모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놀랍게도 이런 말을 한다. “소비 통제가 안되니 저축부터 먼저 해야 한다.” 우리의 현주(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골드미스였다가 뛰어난 결단력으로 내 집까지도 장만한)씨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입사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2000년 대 초반 즈음) 회사 전체적으로 임금 인상이 일괄적으로 시행된 적이 있었다. 직급과 호봉에 따른 임금 인상이 아니라 전직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월 30만원 인상이었다. 그녀와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앞으로 매달 30만 원이 더 추가적으로 들어 온다니 이걸로 무엇을 할까, 골프를 새로 시작할까, 그동안 못다 한 쇼핑을 더 할까? 다들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을 때, 현주씨는 남들처럼 이것저것 필요한 것, 평소 해보지 못한 것, 이런 것들에 눈이 가기 전에 “이 돈을 빨리 묶어 놔야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헤픈 돈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급여 인상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 시간을 이용해 근처 은행으로 가 정기적금을 들었다.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기 전까지는 돈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저축을 해 둔 것이었다.
현주씨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돈을 잘 모으는 사람도 똑같이 돈을 쳐다보고 있다 보면 저축보다는 이렇게 쓰고 싶고, 저렇게 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그녀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이 같은 통제력(소비를 통제하는)이 더 놀라운 이유는 은행에서 가입하고 온 적금의 금액이었다. 분명 월급은 30만원이 올라간다고 했는데 그녀가 가입한 적금 금액은 40만 7천 원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당시 금리 5%로 1년 후 500만원이란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40만 7천원을 납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월급은 30만원이 더 오르는데 저축은 40만 7천 원을 더하게 되면 생활비에 펑크가 나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일단 해보고 혹시 펑크가 나면 그때 저축 금액을 줄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가입했다고 한다. 저축은 먼저 기선제압을 하듯 일단 지르고 볼일이다, 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대출이나 소비는 저지르고 나면 뒷일 수습이 어렵지만 저축은 저지르고 나서 문제가 되면 낮추면 그만이라는 설명이었다.
정리하면, 현주씨의 소비 통제력이란 안 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선저축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내 손에 돈이 있으면 소비의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예 내 손에서 돈을 없애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우리가 소비 통제가 안 된다고 하는 진짜 이유는 쇼핑을 너무 자주 해서가 아니라 저축을 너무 안 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뭔가 머리를 한 대 탁 맞은 느낌이 들지 않나. 다시 한번 정리하면, 저축은 소비하고 남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저축부터 먼저 하고 나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글 : 김경필 경제금융 칼럼리스트)
저는 월급이 들어오면 생활비로 쓸 돈, 기부하고 봉사하기 위해 쓸 돈 따로 정해진 통장에 빼놓고 그 돈만 씁니다. 그렇게 하니 소비통제가 쉬워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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