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필사 도구 갖추기

처음 필사할 때는 도구를 따지지 않았다. 집에 쓰다 만 노트가 있길래 앞부분을 찢어버리고 거기에 필사했다. 볼펜도 어디선가 얻어 온 것으로 썼다. 행위가 중요하지, 도구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러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고퀄’의 노트를 써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필감이 살아났고, 필사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살아났다.

​필사를 떠올렸을 때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귀찮은 게 아니라 설레어야 한다. 이때 도구가 제법 역할을 한다. 연필로도 볼펜으로도 써봤는데, 만년필만큼 오감을 충족하는 필기구가 없다. 글자를 쓸 때 사각사각 소리가 가려운 곳을 긁는 듯 시원한 쾌감을 준다. 연필처럼 손가락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거나 볼펜처럼 잉크가 흘러나오지도 않는다. 날카롭게 각져 있는 촉때문에 펜을 잡는 방향에 따라 글자 모양이 다르게 나온다. 그래서 균일한 필체를 갖기까지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필사용 필기구를 고를 때 고려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손목이나 손가락에 들어가는 힘이 피로감을 좌우한다. 그래서 엄지와 검지 사이에 느껴지는 두께감, 지면에 닿을 때의 필기감이 중요하다. 적당한지는 직접 쓰면서 느껴봐야 한다. 사각거리는 청각적 만족감 그리고 모양이나 색깔이 취향에 맞는지도 살핀다.

​노트는 종이 두께를 신경 쓴다. 뒷면에 글씨가 비치지 않고 번짐이 없어야 한다. 표면이 너무 매끄럽거나 거칠지 않아야 손에 힘이 덜 든다. 무지 노트는 자유로움을 주지만 필체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면 선이 있는 노트가 정갈하게 쓰기에 더 좋다. 글을 쓸 때 불편하지 않도록 좌우로 잘 펼쳐지는지도 확인한다. 가격도 따져봐야 한다. 너무 비싸면 부담스러워서 꾸준히 사용하기 힘들다.

​참고로 내가 4년째 쓰는 필사 노트는 플랜커스 제품이고, 라미 사파리 만년필(EF촉)을 쓴다.

​(글 : 글쓰기 코치이자 작가 김선영)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책을 최근에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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