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협상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협상은 제게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의실에 앉아 있던 순간, 식탁에서 반찬을 고르던 순간, 심지어는 서점에서 책 값을 두고 마음속에서 줄다리기하던 순간까지, 협상은 늘 제 일상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장면에서 저는 자주 졌습니다. (웃음)
“아, 내가 왜 저 말을 못 했을까.” “지금 이 한마디를 꺼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 그 후회가 쌓이다 보니, 언젠가부터 제게는 ‘협상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교과목’이라는 자각이 생겼습니다.
연구자가 되고 나서는, 그냥 지나쳤던 그 순간들을 학문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었고요. 결국 협상학은, 제가 제 인생의 시행착오를 공부의 언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작가님은, 본인을 협상가라고 생각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직도 “협상가라 하기엔 김치찌개 선택조차 망설이는 사람”입니다. (웃음)
구내식당에서 “오늘은 김치찌개? 된장찌개?”로 스스로와 협상하다 지고, 마트에서 과자 세일에 넘어가며 또 지죠. 하지만 그런 소소한 일상에서도 배우는 게 많습니다.
결국 협상가는 ‘한 번에 완성되는 직업’이 아니라, 매일같이 실험하고 넘어지면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정체성 아닐까요? 저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고, 그래서 협상가라기보다 ‘협상 실험가’로 불리는 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3. 협상가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은 어떤 것이 있나요?
많은 분들이 “협상은 결국 말빨”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첫 번째 자질은 말이 아니라 귀입니다. 잘 들어야 합니다. 상대의 말뿐 아니라 말하지 않는 숨, 표정, 망설임까지 들어야 합니다.
그다음은 상상력입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욕구를 그려내는 힘이죠.
마지막은 성실함입니다. 협상은 결국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멋있게 말하고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끝까지 결과를 관리할 수 있어야 진짜 협상가입니다.
그러니까 협상은 “입”보다 “귀와 가슴, 그리고 엉덩이(끝까지 앉아 있을 끈기)”의 문제입니다.
4. 누구나 협상가가 될 필요가 있나요?
당연하죠. “나는 협상 안 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사실 하루에도 열 번씩 협상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게임 10분만 더 하자”고 조르는 순간, 이미 거실은 세계정상회담의 무대가 됩니다. 부부가 주말에 갈 곳을 정하는 순간에도 작은 무역전쟁이 벌어집니다.
협상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배경음악 같은 겁니다. 그러니 협상을 안 배운다는 건, 피아노 치면서 음표는 안 배우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유는, 협상을 알면 삶이 덜 삐걱거리고 덜 후회되기 때문입니다.
5. 협상이라고 하면 싸움처럼 느껴집니다. 협상은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요?
네, 많은 분들이 협상을 “기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밀고 당기고, 네가 이기면 내가 진다고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협상은 ‘싸움’이 아니라 ‘번역’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 다른 욕망을 하나의 문장으로 묶는 작업이지요. 싸움처럼 보일 때는, 아직 서로의 언어를 못 찾았다는 뜻입니다.
협상의 힘은 결국 갈등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능력입니다. 전쟁터에서도 협상 테이블 하나가 평화를 가능케 하듯, 일상의 작은 갈등도 협상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6. 대화를 주도하지 않고도 협상을 잘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협상은 꼭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사람만이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닙니다. 가끔은 침묵이 최고의 전략이 됩니다.
상대가 불안해하며 말을 보태게 만들고, 그 틈에서 본심을 흘리게 되죠.
대화를 주도한다는 건 단순히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라, 흐름을 조절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강한 조류가 아니어도, 바람 한 줄기만으로도 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듯 말이죠.
7. 협상은 기브앤테이크에 기반한 건가요?
절반만 맞습니다. 기브앤테이크라면 “네가 사과 하나 주면 나도 사과 하나 준다”는 단순한 계산이겠죠.
하지만 진짜 협상은 “네가 사과 하나 받았는데 사실은 두 개 받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고, 동시에 “나는 사과 하나 줬는데 사실은 그게 내겐 별거 아니었던 것”으로 설계하는 겁니다.
결국 협상은 교환이 아니라 인식의 예술입니다. 이게 협상의 매혹적인 점이죠.
8. 협상이 중요한데 왜 제대로 배우기 어려웠을까요?
우리는 영어 단어는 줄줄 외우면서도, 정작 ‘말로 원하는 걸 얻는 법’은 배우지 않았습니다. 아마 협상이라는 단어가 “장사꾼의 술수” 혹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 기술”로 오해받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협상을 모르면 손해 보게 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글로벌 무역도, 직장생활도, 심지어 가정의 평화도 협상 없이는 유지되지 않으니까요. 이제야 비로소 협상 교육이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된 거죠.

9. ‘협상의 달인’이라는 트럼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트럼프는 협상을 ‘내가 이기면 끝’이라는 구도로 밀어붙였습니다. 사실 협상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인데, 그걸 승자독식 게임으로 만든 게 문제였죠.
정치라는 영역에서 협상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도덕적 토대 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협상을 “도덕” 대신 “이익”으로 환원해버렸습니다. 그게 그의 지지자들에겐 매혹이었을지 몰라도, 국제사회와 국내 여론에겐 불신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책을 쓴 이유도 트럼프의 속살을 드러내고, 배울 건 배우고, 이길 건 이기자는 의미에서였습니다.
10.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무엇을 얻어가면 좋을까요?
저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장 트럼프처럼 무역전쟁을 벌이길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내 옆 사람과 건강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예컨대, 부부 싸움에서 조금 더 부드럽게 풀어내는 법, 직장 회의에서 덜 후회하는 선택을 하는 법입니다. 협상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작동하는 언어의 힘입니다.
협상은 단순히 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를 지키며 원하는 것을 얻는 기술입니다. 결과적으로 협상을 배우면 덜 손해 보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은 안내서이기를 바랍니다.
| 정재엽 박사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의료경영(Health Management)을 전공한 뒤, 연세대학교에서 조직전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여 년 동안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국제 비즈니스와 전략 협상 업무를 담당하며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남서울대학교 글로벌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다. 언론·방송·칼럼을 통해 협상과 의사 결정의 본질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데 꾸준히 노력해 왔으며, 현장의 생생한 사례와 학문적 통찰을 연결하는 글쓰기로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협상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협상을 주제로 한 박사 학위 논문 「기업 회생 절차에서 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탐색적 연구」는 2020년 한국갤럽조사연구소와 한국조사연구학회가 공동 주관하는 학위 논문상 우수상과 (사)한국협상학회가 주최하는 우수 박사 학위 논문 대상을 수상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