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와 이치로

밴댕이는 다 자란다 해도 12cm. 게다가 몸 크기에 비해 내장이 들어있는 속이 아주 작아서 마음 씀씀이가 좁고 얕은 이를 밴댕이 소갈머리라 한다. 원래부터 밴댕이는 아니었어도 일을 하면 할수록 밴댕이가 되기 딱 좋은 업을 꼽는다면 광고 카피라이터가 세 손가락 안에 너끈히 들지 않을까.

모든 아이디어는 연약하게 태어난다. 완성되기 전까진 사소한 훼손의 시도에도 쉽게 죽는다. 그러니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해져 밴댕이가 되기 쉽다. 좁은 입구를 깊게 후벼파서 찾아야 하는 게 아이디어인지라 넓게 보기보다는 좁게 보는 데에 익숙해지니 그 또한 밴댕이가 되기 쉬운 이유다.

그러나 밴댕이가 되어선 곤란하다. 더 큰 카피라이터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한 인간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밴댕이 소갈머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길다. 커리어도 길게 봐야 한다. 한두 번 장사할 게 아니라면 정신도 육체도 평상의 컨디션을 가능한 한 베스트로 유지해야만 한다. 광고는 지적인 비즈니스인 동시에  육체적으로 고달픈 노가다이기도 하다. 평상의 루틴을 단단하게 유지하면 비상에 대한 대처가 조금이라도 더 대범할 수 있다. 동료의 시니컬한 아이디어 비평에 대해 웃으며 설득하는 일. 최선을 다한 일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씩씩하게 다음을 도모하며 여유를 갖는 것. 말하자면, 다운은 허용해도 케이오는 당하지 않기 위해 일상의 루틴을 건강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나는 매일 6시 20분 알람에 한 번에 일어난다.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신음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고 사과, 당근, 레드비트를 함께 간 주스로 아침식사를 한다. 7시 30분 회사에 도착해서 동료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한겨레와 조선일보, 한국경제 신문을 훑어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한 번도 눕지 않고 턱걸이와 푸시업, 스쿼트를 이틀 이상 거르지 않으며 주말엔 1시간 이상 사이클을 탄다. 회사에도 집에도 늘 손 닿는 곳에 책을 둔다. 이것이 나의 루틴이다. 

‘내일도 경기하기 위해 오늘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1년 365일 중 362일을 똑같은 루틴으로 준비한다는 이치로를 알면 대단하다는 감탄을 넘어 경외감마저 든다. 

마하트마 간디에게 영향을 준 영적 구루들의 가르침은 <심플 리빙, 하이 싱킹>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사건에 의해서도 자신 내면의 평화를 깨뜨리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며 나아가라는 메시지. 일상의 루틴을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건 성취를 위해서도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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