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투원(Zero to One)이 아니라, 원투밀리언(One to Million)

MBA 이후 독서 모임에서 나는 클럽장이었던 박지웅 대표에게 처음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박지웅 대표는 엑셀레이터 기업 패스트트랙아시아의 대표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컴퍼니 빌더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처음부터 명확했어요. ‘3개월 안에 매출 1억을 만들 수 있는 사업만 하자.’ 그 기준에 맞추다 보니, 정답은 이미 나와 있더라고요. 다른 나라에서 검증된 모델을 국내에서 실행하는 것, 그게 가장 확실했죠. 패스트파이브가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위워크(WeWork)가 모델을 검증했기에, 우리는 철저하게 따라 하기만 하면 됐어요. 룸 사이즈, 가구 배치, 복도 폭까지 철저히 베꼈습니다.

경험에서 나왔을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고, 그대로 실행했어요. 어설픈 차별화는 오히려 해가 된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2년쯤 지나 위워크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다행히 우리도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였습니다. 그제야 우린 차별화를 시작했고, 진짜 경쟁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신선했다.

이전에 내가 접해왔던 스타트업 세계는 전통적으로 제로투원(Zero to One)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 세상에 없었던 무언가를 최초로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세상을 앞으로 굴리는 것을 꿈꿨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발을 앞으로 내딛어야 하고, 불가능해 보여도 버텨야 했다. 그렇게 한 번뿐인 창조의 순간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서 제로투원은 늘 빛났다.

하지만 박 대표는 달랐다. 애초에 단기 사업화를 목표로 삼았다. 제로투원을 자신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다고 봤다. 대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원투밀리언(One to Million).

이미 검증된 모델을 더 정교하게 실행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빠르게 확산시키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고, 그는 그 역할을 택했다.

LG에서도 다양한 혁신 사례를 분석하며, 비슷한 결론을 낸 적이 있다. 정작 세상을 바꾼 건 ‘제로투원’보다 ‘원투밀리언’에 능한 회사들이라는 결론 말이다.

컴퓨터 마우스는 SRI연구소에서 처음 만들었지만, 애플이 맥킨토시 컴퓨터에 번들로 제공하면서 대중화됐다. 휴대폰은 모토로라가 개발했지만, 노키아가 합리적 가격과 디자인으로 온 인류의 손에 쥐여주는데 성공했다.

애플도 한때 제로투원에 집착한 적이 있다. PDA 뉴튼, TV 컴퓨터, 교육용 노트북eMate300 같은 제품들이 그랬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후
애플은 전략을 바꿨다. 세계 최초를 쫓기보다 이미 있는 것들을 잘 조합하여 고객에게 정말 의미 있는 혁신을 제공하기로 말이다. 그 정점이 바로 아이폰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전설적인 아이폰 소개 프레젠테이션을 떠올려 보자.

“아이팟, 폰, 인터넷… 이해하셨나요? 이건 세 개의 제품이 아닙니다.”

잡스는 단 한 문장으로 시장을 이해시켰다. 누구도 애플을 카피캣이라 욕하지 않는다. 제로투원은 아니지만, 원투밀리언을 너무 완벽하게 해내서 전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을 배웠고 그렇게 일을 마쳤다>
ㅡ 삼성, LG, 현대를 다니며 깨달은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ㅡ 책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약간의 편집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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